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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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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싫은 말을 할 때는 참죠. 두 번, 세 번 참는데도 또 그러면 화가 납니다. 그리고 바로 쏘아 줍니다. “네가 잘못해 놓고 왜 그래?”, “너네 집엔 아래위도 없니?” 참 많이도 울컥했는데, 지금은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정은 많은데 조심성이 없는 윤창이, 늘 뭘 하는지 모르게 조용한 성근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척하지만 친구에게 은근슬쩍 양보하는 태홍이, 그리고 그 사이를 휘젓고 다니던 제 모습으로 교실이 가득합니다. 정말 머리로만 아이들을 대했던 것 같아요. 많이 후회가 됩니다. 이제 개학하면 가슴으로 가르칠 겁니다. 여태까지 내 생각대로 했다면 앞으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대하려고 합니다.》
제자는 아무도 없는 교실을 둘러 보다가 느낀 소회를 절절히 보내왔다. 날카로운 말이 오가다 보면 누군들 신경이 곤두서지 않으리오마는, 많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실에선 참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상사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런 부대낌을 학교에서 가정으로 옮겨 놓았다. ‘대면 교육’이 가정에서 이뤄지다 보니, 교실 장면이 고스란히 가족 사이에서 재연될 수밖에 없다. 급우는 형제로, 교사가 부모로 바뀌었을 뿐 ‘인간관계에서 오는 부대낌의 일상’이 하루의 빠짐도 없이 모두 가정으로 옮겨 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생활과 학습을 졸지에 떠맡게 된 부모들의 고통은 가히 충격수준일 수밖에.
언어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언어를 사용하여 주변의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습득하고 자신의 의사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배움으로써 진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정은 언어능력 함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므로, 자녀와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게 된 지금이야말로 가정의 언어환경은 더없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번 달부터 아이들이 등교하게 되어 다시 학교생활을 이어가겠지만, 예전처럼 자유로운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이 모인 공간은 말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감염방지’가 최우선이므로 누구든 간에 거리를 두어야 하고, 하고 싶은 말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말의 중요성을 모두가 새삼스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종족은 좌우란 말은 없고 동서남북을 중심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너의 왼쪽’이 아니라 ‘네가 서 있는 곳의 동남쪽’으로 나타낸다니, 얼핏 들을 때는 복잡한 것 같아도 곰곰 생각해보면 헷갈릴 일 없이 아주 정확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또 밝은 파랑과 어두운 파랑을 구분하는 언어를 가진 민족은 어두운 파랑에서 밝은 파랑으로 변화하는 대상을 보며 놀람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파란색을 하나로 묶어 인식하는 우리는 미세한 색의 변화에 무덤덤할 뿐이다. 꽃병 깨진 것을 표현할 때 우리는 ‘철수가 꽃병을 깨뜨렸다.’라고 하지만, ‘꽃병이 깨졌다.’와 같이 현상만을 나타내는 언어도 있다고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표현한 경우에는 행위자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의 여지가 큰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상을 나타내는 말은 일어난 일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한다. 그러한 생활과 태도는 결과에 대한 책임추궁보다 현상을 바르게 보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익히 알고 있듯 다리(교량)를 남성명사 혹은 여성명사로 규정해 놓은 나라의 말들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 기다랗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여겨 여성명사로, 반면에 크고 강한 남성의 모습을 연상하여 남성명사로 구분해 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몇몇 사례들은 대상에 대한 인지의 정도나 시공간 인식 혹은 성 인식 사고방식의 차이에 따라 나타나는 언어의 모습들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우리는 별 ‘생각’없이 말을 하거나, 실수를 한다 해도 사과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게다가 기분이 상할라치면 할 말을 다 해버리기 때문에 전달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서로의 관계도 무너지고 만다. 자라는 자녀 특히 10대들은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가 높고 상대방을 힐난하기 쉬운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똑같이 응대하다 보면 부모로서의 품위를 잃기 쉽다. 부모는 되돌아보는 말, 보듬어 주는 말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말보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 소중한 아들딸, 고마운 부모님, 정겨운 형제들은 본디 서로에게 악의가 있을 수 없다. 좋은 마음과 좋은 뜻으로 시작한 말들이므로 잘 받아 주어야 한다. 내가 잘 받아 내면 상대방도 또한 그렇게 노력할 것이다.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저자소개>
마을활동가. 선주문학회・생활공감정책 참여단・지방 자치분권 지지 활동. 청소년 진로체험 자원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