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경북문화신문 |
|
백우진은 배고픈 정도를 6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입이 ‘궁금하다’를 시작으로 ‘구준하다’, ‘출출하다’, ‘시장하다’, ‘배고프다’, ‘허기지다’로 배고픔의 단계를 정하였는데, 의미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단어의 풍부함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배고픔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구준하다’는 충청도 사투리여서 이쪽에선 잘 안 쓰지만, ‘시장한 것은 아니고 뭔가 주전부리를 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니 그 느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밥상은 보리밥과 나물 중심으로, 그것도 배불리 먹는 일이 드물었으니 배고픈 상황에 대한 표현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다른 주전부리도 없었으니 밥 먹고 돌아서면 출출하고, 배가 고팠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인 밥그릇은 물 260cc가 들어갈 정도이지만 1세기 전만 해도 그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밥그릇은 컸지만 영양에 대해 신경을 못 쓰고 살아오다가, 점차 소득이 향상되자 구매력이 증대되고 여러 가지 생활의 질이 개선되고, 급기야 음식 기호는 물론 영양 상태가 넘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위키피디아에서 제1세계를 검색하면 “민주적이고 높은 기술 수준을 가졌으며 시민의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라 정의해 놓았고, 냉전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대한민국도 ‘경제적 선진국’으로서 이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최근의 저서 『대변동-위기, 선택, 변화』에서 제1세계의 모습을 장래에 세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와 연관시켜 서술하고 있다. 석유・금속같은 자원의 1인당 평균 소비량과 플라스틱・온실가스 같은 폐기물의 1인당 평균 생산량은 개발도상국가보다 제1세계 국가에서 약 32배 높다. 예컨대 가난한 국가의 시민보다 미국인이 32배 많은 휘발유를 소비하고, 32배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제1세계 국가로서 그 배율이 미국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1인당 탄소배출 순위가 세계 4위인 만큼 미국과 어금버금할 것이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32라는 인수가 인류의 미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인간을 위협하는 유형으로 말이다. 케냐의 인구가 5,000만 명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케냐보다 30배 정도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계산하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살아가는 인구 10억 명보다 더 많은 자원을 대한민국이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껏 소비하고도 더 많은 소비를 향해 달려갈 때 인류는 코로나 국면에 맞닥뜨린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동안 선망해 마지않던 선진국, 드디어 그 나라들과 엇비슷한 수준의 과소비 대열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실체를 보고야 만다. 물론 시스템이나 문화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합리적’ 판단은 우리가 보기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제3세계’ 뺨치는 사재기 대란, 엄청난 감염자와 사망자의 숫자는 ‘잘 사는 선진국’에 대하여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자문하게 한다. 지금 서구에서 일어나는 그들 나름의 합리적 삶의 대처 방식은 모순투성이다. 한쪽에선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빠져 있지만, 또 한쪽에선 모여서 떠들썩하게 마시고 즐기는 중이다. ‘자유와 권리’를 맘껏 누리는 것이리라. 그들만의 이치나 이론의 함정에 빠진 선진문화의 긍지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러니 서구 선진국의 삶의 방식이 미래 우리들의 잘 사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최대의 향락과 소비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제는 그 지향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파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선택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불평등과 불공정을 고쳐나가면서 덜 먹고, 덜 쓰고 함께 나누는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끝을 모르는 소비만을 향한 질주가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는지, 지금 서구인들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소개>
선주문학회원・구미시 푸드플랜 추진위원・지방 자치분권 지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