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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우
-원정서당 훈장/ 금오경학연구소 소장 / 구미시배드민턴협회 회장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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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예문지」에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이나 그 당시 사람들과 응답한 말, 제자들이 서로 말하거나 공자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기록한 책이다. 당시 제자들은 직접 들은 저마다 따로 기록한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자가 돌아가신 후 문인들이 모여 기록한 말을 모아 의논하여 편찬하였으니 그 까닭에 이것을 『논어』라 한다.’라고 나와 있다.
이 글을 보면 『논어』의 편집은 공자 사후 제자 또는 그 문하의 제자들에 의해 편집되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논어』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일본 『고사기』 응신왕대의 기록에 백제의 조고왕이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3세기 중엽이전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국교가 되면서부터 주자의 『논어집주』가 존중되어 우리가 현재 『논어』라고 부르는 것은 『논어집주』를 두고 보는 경우가 많다. 『논어』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접어두고 『논어』의 첫 구절을 살펴보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논어』는 학(學) 즉, 배움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지(知), 즉 앎의 문제로 끝을 맺고 있다.
유교사상에서의 학(學)은 현대적 의미인 배움의 행위보다 깊은 뜻이 있다. 학이라는 말 속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간과하고 유교사상을 말하기 어렵다고 본다.
주지하듯이 유교의 경전 중에 『소학(小學)』 과 『대학(大學)』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학(學)을 중요시 하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대인의 배움 또는, 큰 배움이란 의미의 『대학』의 첫 구절에 이런 글이 있다.
“큰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에 있다.”(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밝은 덕을 밝힌다’는 것은 본성을 회복하여 스스로 완성된 사람을 이루는 것이고,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새롭게 하고 다른 사람의 삶까지 새롭게 도와, 함께 지극히 좋은 곳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다시 풀어서 말하면 『대학』은 자신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난 후에 중생구제 즉 남들도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함께 좋은 세상을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이 된다. 공자께서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는 것은 15살에 이 세가지일에 일삼아 살기로 마음을 두었다는 것이 아닐까?
유교의 비조인 공자는 스스로 성인이나 인자(仁者)의 자리에는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십여 가옥이 있는 마을에 충성과 믿음이 나 같은 사람은 있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 않다.”(十室之邑에 必有忠信이 如丘者焉이어니와 不如丘之好學也니라)고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호학자(好學者)의 자리에는 자처 하셨다. 3천 제자들 중 오직 안연만이 배우기를 좋아했던 사람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배운다는 것은 앎으로 가는 과정이다. 알아가는 기쁨은 누구와 함께 공유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 배워서 아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때때로 익혀 자신의 몸에 내재화 시켜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학습이다. 이런 학습의 과정에서 뜻이 맞는 도반을 만나는 일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뜻을 함께 나눌 도반을 만나지 못하거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배움의 길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알아주기를 구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한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하는 공자의 반문이 배움이 위기지학에 있었던 까닭이다.
배움에 대한 즐거움은 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없고 또한 받을 수도 없다. 배움의 즐거움은 오롯이 자기를 위한 학습의 과정에서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일들은 알지 못하면 그것을 좋아 할 수 없고,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것을 즐길 수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