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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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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본란을 통해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시민과 행정간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하는, 시민교육과 컨설팅 등을 통해 주민 역량을 강화하고 주민 수요에 의한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공급하여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며, 행정실패를 최소화하여 주민 만족도를 증진할 수 있는 조직을 구미시와 의회에 제안하였다. 그러한 중간지원조직과 함께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마을자치지원관 배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구미 지역에서처럼 읍면동장이 임명하는 주민자치위원회 형태의 주민자치 접근방식은 많은 한계가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양한 민주적 회의 방식,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사업 수행에 대한 실무행정력을 함양해야 하는데, 주민자치위원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무보수로 일을 해나가야 하므로 실무 지원 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아가 주민이 실질적인 마을의 주체가 되기 위해선 역량 강화가 필수적인데, 이를 도우면서 자치회의 실무도 지원하는 마을자치지원관은 꼭 필요한 인력인 것이다. 현재 대구에서는 구군마을계획지원관으로, 충남 당진, 서울 광진구, 강서구 주민자치회 등에서는 마을자치지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행정의 민관협력을 촉진하고 주민자치회 운영 및 자치계획 수립지원 및 촉진, 주민자치회 역량 강화 등 주민자치회 밀착지원, 주민총회 지원, 기타 주민자치회 운영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마을자치지원관은 구미시민에게는 생소하지만 전국의 여러 곳에서 주민과 지역 주체 간의 관계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명확한 목표를 가졌다기보다 주민자치회로 가는 과도기적 성격의 조직인데다가, 주민 상호 간의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는 조직이므로 자치지원관의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행정부서에서 역할을 대신한다거나, 주민에게 권한과 예산을 주어 알아서 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치위원과 주민들이 지역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맡은바 그들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당당히 주체로 자리매김하여 활동하기 위해선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행정 및 공공영역에 대한 권한과 의무에 대한 이해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도 행정부서에서는 주민자치 지원을 하고 있지만, 주민주도의 계획과 실행까지 이루어내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일정 기간 동안에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공무원조직의 성격상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주민사회의 공론을 이끌어내고, 수평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많은 관급 사업에서 이를 익히 확인한 바 있다.
도시지역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농촌 지역의 마을에서 농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일례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올 한 해에 펼치는 지원사업이 400여 가지가 넘으며, 안내 책자의 분량은 500쪽이 넘는다. ‘2020년 농식품 사업 안내서’는 농식품 사업별 목적・주요 내용, 지원 자격・요건이나 지원 한도, 재원 구성, 연도별 재정투입현황, 담당자 연락처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제시하고 있다. 또 둘 이상의 농업인, 농업법인 등을 대상으로 사업대상자를 선정하는 공모사업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농식품 사업시행지침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농식품 사업시행지침서는 별도 회원가입 절차 없이도 농림사업 정보시스템(www.agrix.go.kr)에 접속하여 확인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참 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책자를 펼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위에 제시한 내용만으로는 우리 마을에 필요한 지원사업이 어떤 것인지 알아볼 수도 없거니와 설령 그러한 사업을 찾았다 하더라도 신청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신청조건은 맞는지, 어떻게 신청하는지, 신청 이후 어떤 조건으로 선정하는지, 지원 한도는 어디까지인지…사업시행지침서까지 훑어봐도 여전히 깜깜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랏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부지런하면 뭐라도 얻어먹는다, 가만히 앉았으면 누가 알아주나…이런 관행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매우 다양한 사업이 있다는 걸 국가는 주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줄 책임이 있다는 것과, 이를 안 주민은 누구든 스스럼없이 사업에 대해 상의할 대상이 있어야 하며, 진행 과정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
마을자치지원관. 그 이름이나 기능에 매달리기보다는 주민의 삶을 전반적으로 열어놓고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위에서 지적한 지원사업도 그 한 예가 되겠지만 마을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제안하고, 묻고, 토론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의 대표인 지방의원들도 자연스레 참여하여 주민들의 요구를 경청한 후 입법 여부를 판단하거나,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행정부서에 요구하고 제안을 할 수도 있겠다. 주민들이 객체가 아닌 공동체의 주체가 되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높은 자존감을 가져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지방자치의 원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업무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재원
마을활동가・선주문학회원・생활공감정책 참여단・구미시 신활력 플러스사업 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