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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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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불경기에 고객은 어느 업소에서나 왕 대접이다. 물론 업주의 이윤창출에 기여할 때에 한해서다. 구미 시민 역시 민원창구에선 고객 대접을 받는다. 창구 가까이에 음료라든지 앉을 자리가 준비되어 있고, 담당자들로부터 호의적인 안내를 받는다. 시민은 그 도시의 주인이지 손님은 아닌데도 창구에서 고객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까탈스런 민원을 제기하면 패신저passenger로 변하고 만다. 승객이나 손님 따위의 짐스러운 사람으로 말이다. 주인이 짐으로 변하는 일도 이젠 예사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요즘 의성을 자주 가게 된다. 주로 가는 곳은 안계읍에 있는 ‘의성 이웃사촌 지원센터’이다. 처음에는 우리 마을 가꾸기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차츰 관심이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이 전국적인 화두가 되어 있고, 주지하다시피 의성군은 소멸지역 첫손가락에 드는 지방자치단체이다. 보통 지방소멸 지수 1.0 이하는 지방소멸 주의단계, 0.5 미만은 위험단계로 구분하는데, 의성은 0.143이니(2019년 기준) 위험한 정도가 아닌 위기 단계라 해야 하겠다. 이러한 의성이 작년부터 대대적인 자구노력을 시작하면서 처음 선택한 것이 관 주도에서 민관협력 사업으로 가고자 설치한 ‘의성 이웃사촌 지원센터’이다. 이를 통해 청년 인구를 적극 유치하고, 인구소멸 고위험지역 의성의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전 군민이 나서서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 도농연계 강화지원 사업, 도시 청년 유치사업을 펼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청춘구 행복동 1기 정착 프로그램으로 정착을 결심한 청년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의성 주민’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고즈넉했던 마을은 예술가 일촌 맺기로 활기가 넘쳐난다. 마을 지도벽화와 주민들이 그린 그림일기, 주민들의 일상을 담는 영상, 음악 작업과 현대 무용가와 함께 하는 주민 워크샵,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진 작업,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소설을 쓰기 위한 인터뷰 진행 등으로 의성의 마을은 온통 문화의 열기로 가득하다. 행복한 마을 만들기 과정, 함께하는 사회적 경제과정의 새꿈 학당 중급과정이 열리고 있고, 지역주민 원탁회의가 예고되어 있다. 주민자치 사업을 앞두고 7월 말부터 ‘주민자치학교 및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교육’을 18개 읍면에서 실시하고 있다.
다수의 마을에서 행복마을 자치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요⋅민화⋅운동 등의 많은 주민 동아리가 만들어져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사업관련 세미나라든지 농촌 여름 캠프, 체력 증진교실 등의 활동으로 지금 의성은 그야말로 거대한 지역 학습장이 되어가고 있다.
올해엔 기초지자체 소멸위험지수 2위였던 군위군과 같은 지수가 나왔는데, 지난 1년 동안 청년 유입방안과 지역 생활여건 개선사업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로 추정한다. 그래봤자 여전히 소멸 1순위이니 도토리 키재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1년 만에 소멸지수가 크게 바뀌지도, 더구나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을과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찾아내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켜나가면서 마을을 독특하고 단단하게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 큰 변화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하여 쓸모있게 만들어 놓아야 값어치가 있다. 의성의 자산은 의성 주민들 속에, 지역의 장소에, 문화와 전통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지금은 ‘의성 이웃사촌 지원센터’란 중간지원조직이 공식적, 비공식적 모임을 통해 그 자산들을 연결시키는 중이다. 그리고 청년들의 경제활동이 될 터전을 다듬고 청년들에게 기회와 여건을 부여해서 그들의 정착을 도와주고 있다.
주민들이 지역의 자산을 알아보고 조직,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중간조직은 철수할 것이다. 의성의 물적, 인적 자산들이 주민을 매개로 풍성한 관계를 맺게 될 때, 그때쯤이면 외부의 지원 없이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쌓아 활기 넘치는 공동체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게 되리라. 그렇게 의성은 반드시 재탄생에 성공할 것이다. 몇 번의 센터 방문과 지역 탐방을 통해 의성군과 센터에서 추구하는 비전을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역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끌어올리는 센터의 노력으로 인해 개개 주민들의 능력은 빛을 발하고, 마을의 역사와 문화는 보물로 자리매김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 구미지역을 생각해본다. 읍면 지역과 몇몇 동은 소멸지수로 치면 의성과 어금버금한데도 누구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자치단체와 의회는 각자도생하기에 바쁘다. 주민이 살아가는 지역의 문제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직접 관련되는데도 구미시의 정책 입안‧결정 과정이나 의회의 사무처리는 주민 의사와 동떨어진 경우가 흔하다. 꼭 의성처럼 구미 전 지역을 주민 학습장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구미시장 혼자 구미를 책임지겠다고 그렇게 뛰어다닐 일도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공무원들도 ‘구미 살리기’에만 골몰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주인의 자리에 주민이 앉게 하면 된다.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 준다면, 주민들은 지역 실정을 이해하고 적극 나서게 될 것이다. 주민들이 내 동네, 내 구미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공직자들이 먼저 준비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손님에서 주인의 자세로 바뀌면서 책임있는 역할을 해낼 것이다. ‘주민과 지역이 앞장서는 구미’야말로 진정한 도시 재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의성 군민의 노력은 의성재생 훈련이자 주인으로서의 생존연습이다.
<저자소개>
마을활동가・선주문학회원・생활공감정책 참여단・구미시 신활력 플러스사업 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