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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세상읽기(36)]<취중송사(醉中訟事)>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0월 04일
ⓒ 경북문화신문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그의 출중한 노래도 노래거니와 권력에 초연한 진심이 우리 같은 민초에게 전달되어 정말 반가웠다.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라는 가사는 국민을 상대로 농치는 권세가들에게 요사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또 이런 말은 어떤가. “역사책에서도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 없다. 나라를 지키는 건 바로 여러분 국민.” 참으로 시의적절하여, 울고 싶은데 뺨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조선시대 재판 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김홍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다. 백주 대낮에 사또가 아전과 기생을 거느리고 어디서 놀다가 오는지 몸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거나하게 취했다. 커다란 갓을 뒤로 젖혀 쓰고, 갓끈은 한쪽으로 모아 귓가에 걸쳤다. 그 앞에는 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이 얼마나 화급하게 뛰어 왔는지, 맨발로 엎드려 서로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재판이 끝나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듯 형방은 그 앞에 엎디어 뭔가를 쓰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키득거리는 품새로 보아 아마 웃기는 일이 벌어진 듯하나, 진정인들은 보통 심각한 얼굴이 아니다. 정말 웃기는 재판을 벌였을까, 아니면 김홍도가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그림 <취중송사(醉中訟事)>에 다음과 같은 표암 강세황의 평이 적혀 있다. “물품을 공급하는 이들이 각기 자기 물건을 들고, 가마의 앞뒤에 있으니 고을 수령의 행색이 초라하지 않다. 시골 사람이 나서서 진정을 올리고, 형리가 판결문을 쓰는데 술 취한 가운데 부르고 쓰니, 오판이나 없을는지 걱정이다.” 사또도 형리도 모두 취해 있어 과연 이 판결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당연한 걱정인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재판 업무와 행정 업무가 분리되지 않아, 지금의 시장, 군수, 읍장, 면장에 해당하는 부사, 목사, 군수, 현령, 현감 같은 행정관인 사또들이 재판관을 겸하였다. 행정과 사법권을 함께 지닌 이들 벼슬아치들의 권력과 그에 따른 횡포를 짐작할 수 있을뿐더러 백성들의 고초 또한 쉽게 가늠이 가는 일이다. 또 재판관의 말과 행실은 문제조차 삼을 수 없었으니 그들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밖에. 요즘 들어 횡포에 가까운 권세가들의 언행은 조선시대의 절대 권력에 대한 향수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술인지 이념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무엇에 취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짓과 참에 대한 구분은 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듣고만 있어라’란 식의 언행이 판을 친다. 구글 사전을 검색하면 ‘취(醉)하다’는 동사로써 두 가지의 뜻 즉 ‘술・약 기타의 기운이 몸에 퍼져 정신이 정상적 활동을 잃게 되다.’, ‘열중하여 넋을 빼앗기다.’로 풀이하고 있다. 평생 동안 법을 배운 권세가들의 ‘만사법통’, ‘안하무인’ 자세는, 우리 민초가 볼 적엔 영락없이 ‘무엇에 빠져 그만 넋을 빼앗긴’ 모습으로만 보인다.

상당한 지위에 있는 우리나라 정치인들 대부분이 법률전문가들이다. 그래서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민초들은 ‘법대로 하는’ 그들의 언행에 주눅 든다. 법을 멋들어지게 희롱하는 ‘만사법통’을 근심스럽게 바라본다. 뻔히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입만 쳐다보고 속을 삭일뿐이다. 엘리트 권세가들에게는 일상적인 일들이 민초에게는 생활 반경 밖에 있는 수가 흔하다. 전혀 당연해 보이지 않는 일들을 그들은 ‘일상적’으로 말하고 행한다. 가령 모두가 알고 있는 어떤 ‘사실’도 ‘누군가의 음모’로 ‘끼워 맞춘’ 음모론으로 일축하고, 특정계층의 담합도 지리한 법에 기댐으로써 실상을 알고자 하는 민초들을 지치게 만든다. 독단에 취한 이들의 놀이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취중송사(醉中訟事)>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억울함을 제기한 촌민이다. 공식 법정은 사또의 집무처인 동헌이지만, 고을 수령을 일부러 찾아다닐 정도라면 예사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과연 공정하게 해결되었을까. 아니면 사또가 다른 핑계를 대어 진정인을 다음에 오라며 돌려보내지 않았을까. 그 결과는 알 수야 없지만, 싸움을 벌인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다. 취한 사람이 공정하게, 사안에 맞는 적합한 표현을 찾았으리라는 기대도 어렵거니와 대체로 취한 사람은 자기 방어적이거나 연장을 들고 문을 부술 기세로 달려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취중송사가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다. 형리도 취했고, 권졸들은 모두 키득거리는 가운데 백성들만 죽을 맛이다. 혹자는 세상 사람들을 무지하다고 여겨 민맹정치를 하는구나. 혹세무민의 4행시이다.

<저자소개>  
마을활동가・선주문학회원・생활공감정책 참여단・구미시 신활력 플러스사업 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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