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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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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학가에서 ‘형’이란 말이 유행했다. 여학생들이 남자 선배를 부르던 호칭으로 가족같은 공동체 의식의 발로인지, 여자로 보지 말고 그냥 후배로 보아달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격의없이 쓰이던 호칭임은 분명하다. 이 호칭을 소크라테스에게 붙여 시대적 아픔을 절창으로 풀어낸 나훈아의 노래 ‘테스 형!’이 있다. 방송 직후 두어 달 만에 공식 뮤직 비디오 조회수가 1000만이 넘을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노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 하는데, 무지를 강조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친근하게 부르고 있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치와 도덕적인 지형에서 오르내리던 소크라테스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와 가수의 절절한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세상이 아프다는, 내일이 두렵기까지 하다는 노랫말은 인간과 지성을 사랑한 철학자의 양심과 용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더욱 공감이 간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 후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꼭 갚아주게.”
이 무슨 말인가? 죽어가면서 닭의 얘기라니, 그것도 한 마리를 빚졌다니? 임종을 지켜본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 말의 해석은 분분한데, 논자들은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헌납하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한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를 인류를 위한 축배라고 하였는데, 인류의 쾌유를 위한 축배로 본 것이다. 아테네에는 병에서 회복된 사람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임종 순간의 소크라테스가 쾌유에 대한 감사를 표할 일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인 병을 고치려다가 독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언제든 인간의 병은 고쳐야 하는 것, 언젠가 인류가 모두 착하고 참된 마음으로 돌아가는 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나를 대신 해서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쳐주게.’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기에 그가 마신 독배는 인류를 위한 축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부탁한 닭 한 마리로부터 우리는 지성인의 기본자세와 역할을 강조한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지성인의 할 일은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치는 것. 곧 인간의 정신적 쾌유를 위해 이바지하는 일이야말로 지성인의 기본적인 역할이란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소피스트와 구별하고 심지어 경멸한 것은 ‘철학과 돈’의 결부 때문이었다. 직위나 명예 나아가 죽음까지도 영혼의 본질을 방해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곧 정신적 쾌유의 실천이다. 지식을 한낱 먹고 사는 방편으로만 삼지 않고, 참된 슬기를 깨우쳐주며 밝은 인류의 양심을 바탕으로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실천적 지혜를 추구하였다. 지식을 교묘히 이용하여 치부를 하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을 자각하게 하여 참된 지혜를 얻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지의 자각에 이른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은 지도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참된 지혜를 얻도록 도와주는 조수임을 천명하고, 정신적 건강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은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양심은 자기부정을 바탕으로 했다. 가혹하리만치 치열한 자기를 부정하는 정신은 이성의 원천이 되고 용기와 정의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수사rhetoric가 판을 치는 세상에선 위선이 춤을 춘다. 평등과 공정, 정의가 감미롭게 회자되면서, 수사가 진실인 양 감동을 부추긴다. 진실에 이르지 못하도록 현실을 희망이란 단어로 포장해놓고 접근을 금한다. 이때 ‘테스 형!’이 현실을 끄집어낸 것이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힘들어도 힘들단 말을 못하는 세상이다)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가 후회할 정도로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면 은혜를 베푸는 세상이다)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천국은 닭 한 마리의 빚이 없는 사람이 가는 세상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세상이다. 그래서 가수의 절규를 뜬금없어 하는 사람도 있겠다.
<저자소개>
마을활동가・선주문학회원・생활공감정책 참여단・구미시 신활력 플러스사업 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