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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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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의 주석에 “그릇에는 크고 작음이 있으니, 두(斗 : 10되 들이그릇)와 소(筲 : 1말 2되 들이그릇)와 같은 작은 그릇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고, 양자강과 황하도 끝이 있다. 반드시 천지와 같게 한 뒤에야 측량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器有大小 斗筲 固無論 江河亦有涯 必與天地同然後 難於測量]”라고 하였다.
器(그릇 기)는 네 개의 그릇[口]와 개[犬]가 합쳐진 글자다. 《설문해자》에서는 사방에 있는 네 개의 그릇을 개가 지키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규정하고 있다. 《논어》 〈위정(爲政)〉에 공자는, 군자는 특정한 그릇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했다. 그릇은 형체가 정해져 있어 자신의 용량 이상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군자가 될 수 없다.
欲(하고자할 욕)은 谷(골짜기 곡)과 欠(하품 흠)이 합쳐진 글자다. 이 글자는 慾(욕심 욕)자의 본래 글자다. 이후 ‘~하려고 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자,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란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心을 더해 欲과 慾의 뜻을 분리하였다. 골짜기[谷]은 산에 내리는 모든 빗물이 모이는 곳이지만 물을 보관하지 않고 모두 흘려보낸다. 또 欠은 사람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하품은 기운이 부족할 때 생긴다. 그래서 완전하지 않고 생채기가 난 부분을 ‘흠’이라고 한다. ‘~하려고 하다’는 의미는 ‘욕심’과 뜻이 통한다. 그침이 없이 언제나 하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다. 사람의 욕심은,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고 채우지 못하는 골짜기[谷]처럼 언제나 부족[欠]하다. 그러나 골짜기처럼 담아두지 않고 언제나 비워 두어야 새로운 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언제나 부족한 상태로 생을 마치고 만다.
難(어려울 난)은 堇(진흙 근)과 隹(새 추)가 합쳐진 글자다. 새[隹]가 진흙[堇]에 빠져 날아가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量(헤아릴 량)은 갑골에서는 포대기 위에 깔때기를 대고 있는 자형으로, 곡식을 담아 양을 재고 있는 것을 본떴다. 때문에 후대에 곡식[米]의 분량(分量)을 ‘헤아리다’는 뜻을 가진 糧(식량 량)자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