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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원 마을매니저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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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을 오르내리면서 새해는 시작되었다. 올해도 세계적인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진단 속의 출발이라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더구나 길어지는 코로나의 유행이 사람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하리란 일단의 전망은 이맘때쯤의 전용어인 ‘희망’이란 말도 자취를 감추게 했다. 그간 이룩한 문명이나 문화가 마스크 없인 어느 것 하나도 영위될 수 없는 상태이니, 비록 새해라 하더라도 희망이 어디 발붙일 데가 있으랴. 언제 어디서든 거리를 두어야 하고, 그나마 유지하던 모임조차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주역 구절이 있다. 다가오는 변화를 읽어내야 대응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추락이 있을 뿐이니 변화 자체를 잘 조직해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신년 초부터 모 방송국에서는 코로나 관련 특별기획물을 내보냈다. 국가의 부채나 불평등 심화를 코로나 이후의 난제로 설정했는데, 이 문제들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어둠이었다. 검은 백조black swan-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실제로 나타나 엄청난 변화 초래-가 아닌 회색 코뿔소gray rhino-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고음을 내면서 빠르게 다가오는 위험-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논란은 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부채가 더 빠르게 늘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건강보험, 고용보험, 연기금 등의 고갈로 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불황이 지속되면서 세수는 줄어드니 재정적자를 부채 아니면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기획물에서는 각국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을 집중 조명한다. 삶이 너무 어려워 바이러스조차 중요한 걱정거리가 안되는 사람들. 굶지 않기 위해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데도 오라는 곳 없는 밀접 빈촌의 사람들, 감염 걱정 속에서도 일하러 갈 수밖에 없는 필수 노동자, CEO의 재산을 거대하게 불려주고 저임금으로 생계 위협을 받는 노동자…이들은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코로나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획물에서 한국인의 85퍼센트는 국가 역할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제 나라 돌보기도 바빠, 이전의 세계화를 벗어나 점차 국가 중심으로 가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의의와 역할이 더욱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퓰리즘이나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띤 불평등이 높은 나라들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전 세계의 절반 가까이나 된다(미국과 브라질 등). 대중 영합적인 정치세력과 정책요구들을 제대로 걸러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혼란과 궁핍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면 제대로 된, 장기적 안목에서 공익을 추구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듬는 정부와 시스템을 가진 국가는 어려움을 능히 헤쳐나가면서 위세가 당당해진다.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가 존재의 명확성은 로컬 회복력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올해부터 본격 추진될 한국판 뉴딜은 제도와 시스템개혁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기업이 성장할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수도권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이 경쟁력을 가짐으로써 한국사회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정책이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그린 뉴딜에 부합하는 사업이 지역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의 회복력만큼 국가를 튼튼하게 받치는 동력은 없다. 코로나 위기 속에 부각되는 국가의 존재는 정부 관료나 정치인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이다. 큰 목소리로 국민을 위해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지만 민주적인 절차 즉 토론과 합의문화보다 명령체계가 우위를 점한 지금의 시대 상황은, 이기면 안 되는 사람이 이긴 안타까운 현상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작년 코로나 발생 후 우리 국민들은 정부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따랐던가. 세계적으로 모범이란 말까지 들은 이유는 국민들이 절제하고 겸손한 자세로 정부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가 국민들을 이해할 차례이다. 앞으로 닥칠 미증유의 사태도 국민과 정부가 서로를 이해한다면 작년 전반기처럼 근사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은 초로 만든 날개이다. 국민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높이 날다가는 태양열에 녹아 추락하는 수밖에 없다. 절제하고 겸손해야 국민들이 눈에 보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