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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세상읽기(47)]‘오래된 미래’ 그리고 백기완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02일
↑↑ 서재원 마을 매니저‧선주문학회장
ⓒ 경북문화신문
경기신문 2월 15일자 온라인판에 “거리의 투사, 하늘의 별이 되다...백기완이 살아 온 길”의 제목이 보인다, 서울경제신문은 “서울시, ‘백기완 분향소’에 변상금 부과...박원순 때와 다른 이유는”으로 기사를 실었다.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타계에 대하여 각 매체별로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추모 소식을 전했다. 백기완 개인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일생 동안 표출한 ‘분노에 대한 정체성’이다. 이 땅 위에 태어난 같은 한국인으로서, 빈민과 농민, 노동자 등의 삶을 위해 또 반독재와 통일을 위해 바쳐진 그의 생애는 적잖은 울림이 있기에 짧게나마 그 언저리를 더듬어 본다.

스웨덴 출신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 펴낸 책 ‘오래된 미래’는 16년 간 의 라다크 생활을 쓴 것이다. 자연을 벗하며 욕심이 없던 라다크 사람들이 서구의 영향을 받아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헬레나가 직접 겪은 생활을 바탕으로 기술하였다. 처음 헬레나가 본 라다크는 ‘더불어 사는 사회’였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공동체에서 상조회를 운영하며 경조사에 축의금과 조의금을 내고, 서로 품앗이를 하며 공동의 재산을 만들기도 했다. 예전에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풍경들. 공동체적 행위 자체를 즐겼기 때문에, 교육 역시 부모, 가족, 친구들로부터 친밀한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긴밀하고도 정교한 것이었다.

개방정책 이후 서구의 기계문명, 부유함, 아름다움, 활동성이 속도, 젊음, 청결, 패션, 능력을 강조하게 되었다. 또 기술적 혁신을 무조건 수용하는 서구적 ‘진보’의 개념에 빠져버렸다. 이는 라다크인들 스스로를 원시적이고 미개하며 비효율적인 삶을 사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1975년 이후 급속히 진행된 서구화는 특히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서구문화를 유토피아로, 자신들의 전통을 후진적이고 불행을 양산하는 버려야 할 문화로 인식하도록 변화시켰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목격한 헬레나는 ‘라다크 프로젝트’와 ‘국제생태문화협회’라는 국제기구를 조직하였다. 이것은 라다크에서 발생하는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를 완화하거나 역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헬레나는 끊임없이 노동하고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라다크 사람들의 삶 자체를 행복으로 본 듯하다. 부지런한 노동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버팀목이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 심지어 고원에서 양치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고, 일찍 일을 통해 책임감을 배우는 어린이에게서 감동을 받았다고 기록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헬레나의 라다크에 대한 감동과 우려가 지닌 한계를 볼 수 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라다크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 땅은 대대로 머물 장소도 아니었다. 언제든 떠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고, 연민하는 서구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 보는 라다크 사람들의 삶이 바닥부터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자의적인 태도는 라다크인들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삶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의 다름’을 이유로 일언지하 폄하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근대사에서 분노할 만한 갖가지 사태들에 대해서도, 지역주의 혹은 절대 인물 숭상때문에 막무가내식으로 규정하는 일도 있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이 없어 차별받고 핍박받는 데 대해 이를 바로 잡고자 분노하는 인물들을 눈여겨 보는 안목이 없다. 한평생을 민중을 위해 살아온 백기완 선생이 전 생애에 걸쳐 걸어간 고통에 대해 무지한 게 그 예이다. 반독재 투쟁으로 몸이 반토막나는 고통을 받아내며,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스스로 고된 몸을 이끌고 전국 곳곳을 찾아다닌 그가 보는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의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저항과 분노’ 외의 길을 가지 않은 그는 ‘적당함과 달콤함’을 몰랐던 것일까.

오늘날 라다크에는 수많은 외국인들로 북적댄다. 이제 라다크는 갈등과 불행, 소비와 오염으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지역으로 변해갈 것이다. 돈이 필요없던 곳에서 화폐경제가 활성화되고 돈과 권력에 의해 분리되어 갈 것이다. 세계 경제의 제일 아래층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저물어가는 서구문화의 경험을 일반화하기 위해 한동안 몸부림칠 것이다. 백기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한국인의 원래의 모습을, 대한민국을 대한민국답게 하는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그렇지만 라다크를 세계로 이끌어 낸 헬레나는 결코 라다크의 정체성을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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