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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경(openky@naver.com)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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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 꽃구름에 걸린 마른 가지가 봄바람을 타고 춤을 춘다. 그 몸짓에 시선이 머무른다. 겨우내 고스란히 견디었던 찬 기운을 털어내고 봄뜻을 온몸으로 맞이하듯 연신 바람에 몸을 내어준다. 늘 해 오던 일인 듯 깜냥깜냥 춤춘다. 눈길을 주지 않았던 모든 순간에도 나무는 저렇게 자신만의 춤을 추었겠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발목을 잡을 때도 나무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나날을 채워왔을 것이다. 지금처럼 온 힘을 다해 찰나에 충실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 찰나의 점들이 모여 여기까지 왔으리라.
그런 나무의 삶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불확실한 결과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삶은 아닐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머무르면서 마음의 시선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가 나무는 그 배경을 이룬다.
안토니 가우디와 함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전경으로 펼쳐진다. 몇 해 전 스페인 여행 때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서며 경험한 전율과 감동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있다. 먼저 건축물의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까닭 모를 먹먹함에 눈물이 흘렀다. 가이드를 통해 건축가 가우디의 생애를 들으며 경외심에 고개 숙어졌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안토니 가우디가 서른한 살부터 평생 심혈을 기울인 건축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882년부터 착공에 들어간 이래 1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건축 중이다. 공식적으로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과 다른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가우디는 건축을 향한 굳은 의지로 자신의 상상을 실현해 나간 건축가였다고 한다. 자연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던 가우디는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이고 수직적인 고딕 양식에 자연의 곡선을 건축의 형태로 적용했다고 한다. 파밀리아 성당은 그런 가우디만의 독창적인 형태와 구조를 갖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한 그의 노력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와 파밀리아 성당이 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파밀리아 성당이 ‘과정’에 있는 ‘미완성의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가우디는 자신이 생전에 성당을 완공할 수 없음을 알고도 그저 묵묵히 매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던 것 같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순간들을 춤추며 충실하게 점을 찍었을 것이다. 그에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그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가우디의 그런 삶이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삶’, 나무의 삶과 닮은 것 같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기시미이치로와 고가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진지하게 살자.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지금 여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인생이란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순간이 삶이며,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정한 손에 잡히지 않는 종착역을 향해 끊임없이 내달리며 후회와 자책,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 본다. 지금, 이 순간을 느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잔풀들, 입안까지 감도는 따뜻한 바람, 카페에서 풍기는 커피 향,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도로의 딱딱함, 이 순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나를 오롯이 체감해 본다.
하루가 더해 갈수록 매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살고 싶다. 나무처럼 지금 여기, 찰나의 점들을 꾹꾹 찍어 가다가 어느 날 문득 “아, 여기까지 왔네.”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가뭇해진 하늘 아래 나무 따라 뱅그르르 춤을 추어 본다. 이 순간 충만함으로 가득 찬다. /이애경(open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