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고

시민기고]세차장의 노부부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5월 14일
↑↑ 김경숙 시민
ⓒ 경북문화신문
5월의 날씨가 변덕스럽다. 아침저녁은 쌀쌀한데 한낮만 되면 뜨거워진 열기가 벌써 여름의 맛을 내고 있다. 며칠째 결정짓지 못한 고민 때문에 마음은 더 답답해져 온다. 바람에 실려 온 장미 향기에 잠시 걱정은 내려 두기로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써야 한다. 며칠째 벼르던 세차나 하러 가야겠다.
지폐를 넣자마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쨍그랑거린다. 꽃가루와 빗물로 꼬질꼬질해진 차에 물을 뿌리고 바퀴까지 골고루 거품을 묻힌다. 구석구석 꼼꼼히 헹궈낸다. 이제 잘 닦아주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옆자리 칸에서 조금 나이 드신 남자 어르신이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 “내가 여기 처음 와서 잘 모르겠네요.” 망설이라 말씀하시는 듯하다. “예, 저도 그랬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부인과 함께 오셨는데 하얀색 자가용을 몰고 오셨다. 지폐와 동전 교환, 세차 순서, 세차기 사용법, 비품 사용법까지 꼼꼼히 알려 드리고 나니 두 분 얼굴은 싸움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해 보인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한 시간 넘게 이곳저곳 닦아내고 내부청소까지 하고 나니 여기저기 쑤시지만, 깨끗해진 차를 보니 뿌듯한 마음이다. 옆을 보니 아까 말을 주고받았던 두 어르신이 열심히 차를 닦고 계신다. 자신들의 차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기 좋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부부의 차도 눈부시다. “와! 정말 깔끔하게 세차하셨네요. 길에 나가기 아까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두 분이 정성껏 세차한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남자 어르신은 고마웠다며 음료수를 하나 주신다. 두 분은 하얀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닦은 곳을 또 닦으신다.

여자 어르신은 “노인네 둘이서 웃기지요? 우리 첫 차예요.” 두 분 다 나이가 있어서 운전은 포기하고 지내다가 부인이 용기를 내서 면허를 따고 남편이 새 차를 선물한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첫 세차를 하러 오셨다고 한다.

“용기가 대단하세요. 저는 지금도 손수레보다 조금 빠르게 간다는 마음으로 운전하거든요.”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어르신들도 계시는데,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신 두 분이 신기했다. 여자 어르신은 “천천히 가면 어때요? 후회 없이 살아야 해요. 몇 년이라도 돌아다녀 봐야지요”라고 하신다.

몇 년 전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두 번 만에 겨우 합격을 하고 나니, 남편은 덜컥 중고차를 사 왔다. 운전대만 잡아도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뜀박질하니 쳐다보기도 싫었다. 운전해야 할지 불편한 삶을 유지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운전은 인생에 긍정적 변화를 주었다. 돌아보면 후회 없는 선택이었고 가치 있는 도전이었다.

‘후회’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안 하고 싶은 핑계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싶다는 욕심만 앞세우고 실천해야 할 용기는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게으름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탓을 하며 숨고 싶은 것은 아닐까? 며칠 동안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실마리가 보인다. 하나씩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를 만난다. 그때마다 책을 보기도 하고, 주변에 조언을 구하며 해결하기도 했다. 우연히 세차장에서 만난 두 어르신을 통해 깨닫게 된다. ‘후회 없이 살아라’라는 짧은 말씀은 시원한 바람이 되어 걱정을 날려 주었다.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말고 저질러 보고 후회하기로 결심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후회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결정짓지 못한 고민’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두 어르신은 신나게 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목적지를 확인하고 있을 수도 있다. 천천히 가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용기와 후회 없는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멋진 어르신들이다. 유난히 하얀색에 조금 천천히 가고 있는 차를 만난다면 그분들이 아닐까 기대할 것 같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다. ‘어르신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김경숙 구미 시민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5월 14일
- Copyrights ⓒ경북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냉산문답 “산 밖에 다시 산이 있다” VS “산 밖이나 앞이나 같다”..
˝구미에는 경북 으뜸음식점 한 곳도 없어˝..
코오롱글로텍, 구미 외국인투자지역 1호 국내 복귀기업..
포토]김천시, 농약 빈 병 수거 구슬땀..
`두 자녀도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지원` 이뤄낸 구미출신 황두영 도의원..
구미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24개 품목 추가..
경북 기업 하계휴가 평균 3.63일...42.8% 휴가비 지급..
김천시 SRF소각시설 건축허가 논란...김천시의회 ˝주민피해 우려, 철저한 검토 필요˝..
구미시 신규 공무원 임용식 눈길..
경북도, 육아기 부모 단축 근로시간 급여 보전..
최신댓글
깨끗한 환경 보존을 위해 노래로 전할수 있는 에코그린합창단 멋져요~^^ 어릴때부터 환경 의식을 가지고 환경지킴이가 많이 나오면 아름다운 나라가 될꺼 같아요~!
저출생 출산장려 말로만 하지말고 지금 애들 키우는 사람들 먼저 챙겨야 된다.먼저 낳아 키우는 사람이 애 키우기 좋아야 출산 장려도 하는 것이다. 주변에 교복값도 지원 못받고 애 키우는데 허덕이는 모습 보면서 애 낳고 싶겠는가 교촌치킨 4억 지원할 돈으로 교복이나 지원하는게..
전승지원금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만들어가며 안타까운 마음에,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진실을 말하면 고발이나 일삼는 부류가 있습니다ㅠ
대단하셔요
자연이 전해준 아름다운 선물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욕심이 앞서는 사람들의 손이 탈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소개되고 알려져 더 소중히 지켜가고자 하는 뜻이 모아지길 소원해 본다.
마음이 넓어지는.. 생각이 머무는.. 사진입니다^^
서미정 선생님 보고 싶어요
2번 . 다른 건 거북이처럼 안 생겼고 1번은 촌스러움
그나마 3번이 낫네요. 활동적인 모습이 젊은도시 구미와 잘 맞는 듯.
말도 안되는 배달비를 만든게 교촌인데.. 치킨값 먼저 올린것도 교촌이고.. 굳이 교촌 먹으러 구미까지 올까... 무슨 개인 동닭집 하나에 18억씩이나 들여서..
오피니언
《천자문》 주석에 “곡부는 노나라 땅이다. 주.. 
귀지를 파내야 시원하고, 샤워 후에는 꼭 면봉.. 
‘인간’과 ‘사람’은 한뜻을 지닌 같은 말일까.. 
영화<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보면, .. 
여론의 광장
구미시 예비 문화도시 지정 또 탈락...네번째 도전 실패..  
무을농악보존회 내홍, 문화재 전승지원금 중단..  
구미시, 낙동강변에 인조잔디 야구장 조성..  
sns 뉴스
제호 : 경북문화신문 / 주소: 경북 구미시 지산1길 54(지산동 594-2) 2층 / 대표전화 : 054-456-0018 / 팩스 : 054-456-9550
등록번호 : 경북,다01325 / 등록일 : 2006년 6월 30일 / 발행·편집인 : 안정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정분 / mail : gminews@daum.net
경북문화신문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경북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