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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식 전 형남중 교장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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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손목시계가 멈추었다. 이 시계는 결혼할 때 아내로부터 받은 예물이었다. ‘오리엔트 아날로그’라는 품명으로, 실로 36년간 우리 부부와 동고동락을 함께해 왔다. 돌이켜 보면, 두 아이의 태어난 시간을 알려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이 시계는 나의 교직 생활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교원대 석사 과정 파견 때에는 청주에서 학위 수여의 영광을, 울릉도 벽지 근무 때에는 섬 살이의 애환을 나누었던 친구다. 난 작년에 퇴임했지만, 그는 나보다도 꼬박 일 년을 더 근무하고 물러난 것이다.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그는 내게 아프게 깨우쳐 주었다. 애착 관계에도 끝이 있다는,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새삼 맛보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최근 운명하신 큰형수님을 떠오르게 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렵게 학창 시절을 이어가던 나를 진정으로 뒷바라지해 주시던 분이었는데 ……. 뒤늦게나마 나에게 큰형수님은 회복탄력성의 관점에서 말하는, 한 사람의 지지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애석함과 회한의 심경에 젖어 든다.
그런 가운데 이제 새로운 손목시계를 지니게 되었다. 제3의 인생을 같이하게 된 새로운 벗이다. 퇴임하면서 훈장의 부상으로 받은 시계이다. 귀중한 시계인지라 그냥 보관해 둘 법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손목에 차기로 했다. 그만큼 난 손목시계를 애호한다.
그런데, 내가 왜 이처럼 손목시계를 놓아두지 못할까? 스스로도 궁금해하다가 최근에 아들의 결혼 사진첩 이야기를 통하여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얼마 전에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결혼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결혼사진 앨범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아들 내외가 생각났다. 그들도 결혼식을 올린 지 1년이 가까워지는데, 사진 파일이 담긴 유에스비(USB)만 주고 아직 사진첩을 가져오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우리도 비슷한 사정이라 답답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때 지인이 말했다.
“게들은 파일에 다 들어 있으니, 사진첩은 급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아이들은 부모들이 사진첩을 빨리 보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 모르지요.”
“아, 이러한 엇박자는 디지털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지인의 추정에 참 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어쩌면 나에게는 아날로그 지향성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손목시계를 애호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다른 사람들처럼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면 될 텐데, 굳이 손목시계를 고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날로그 지향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 스마트폰 검색으로 신문 보기를 실천하고 있는 시대에 구태여 종이 신문을 받아 보고 있다. 물론 활자 읽기의 여러 장점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또한, 스마트폰에 메모 기능이 충분히 있음에도 나는 기꺼이 작은 수첩이나 메모지를 사용하여 기록한다. 때로는 낱장의 쪽지 메모지를 포켓에 둔 채로 빨랫감을 내다보면 세탁기에 종이 부스러기가 허옇게 퍼져 아내의 핀잔을 듣기도 한다.
수필을 쓸 때도 바로 컴퓨터 자판기를 쓰지 않는다. 굳이 원고용지를 쓰지는 않지만, 종이에 먼저 초고를 써본다. 주로 넓은 헌 달력 뒷면을 이용한다. 한눈에 보이는 공간에 기‧승‧전‧결 영역을 나누고, 그 영역을 오가며 전체를 입체적으로 완성해 간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생각을 한 줄로만 풀어내야 하는 선조성線條性이 다소 완화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기에 다시금 숙고해 보아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디지털로 달려가는 시대에 아날로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디지털이 속도와 결과를 중시한다면 아날로그는 느림과 과정을 지향한다고 정리하는 것은 다소 도식적이라 할까. 아무튼 사람들은 일찍이 수렵시대 혹은 농경 시대의 유전 형질을 지닌 채 자연을 그리워하듯, 첨단 디지털 시대라 해도 지난날의 아날로그 방식에 대한 향수를 뿌리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향수는 단순한 그것이라기보다 시대의 빠른 물살을 지켜보며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정신을 추스려 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마치 점령군 기병대에 쫓기는 긴박한 순간에도 잠깐씩 달리는 말을 멈추고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혼을 수습하며 기다리는 인디언들처럼 말이다. 이런 사정으로 미루어보면 ‘우리 인간의 몸과 정신이 아날로그’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이제 가파른 디지털 시대에 새 아날로그 손목시계와 함께 숨을 고르며 고희의 언덕을 향해 오르고 있다. 그러면서 이 소중한 손목시계와 함께하는 시간도 유한하다는 것을 새기며 살아가야 하리라. 아울러 뒤돌아보아 회한을 덜 남기며 진정 나답게 꾸려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사색해 보아야겠다. /우동식 전 형남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