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만난 사람’ 첫 번째 손님으로 이선동 선생님을 모시고 싶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도처에 늘렸다. 더 좋은 문학상을 받고, 더 나은 문인 대접을 받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이웃의 누군가는 열심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며 삶을 가꾸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또 그들을 통해 누군가는 희망을 꿈꾸며 지금의 위기 속에서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환영한다.
-조영숙 시인/시낭송가
--------------------------------------------------------------------------------------------------------------
|
 |
|
ⓒ 경북문화신문 |
|
비 오는 월요일은 더욱 촉촉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첫날이라 마음은 차분했고, 고향의 매캐한 굴뚝 연기가 조금은 그립기도 한 그런 날이었다. 어디선가 청국장 냄새가 진하게 코끝을 스쳤다. 적당히 허기진 마음으로 연락도 없이 들어간 곳은 봉곡동 <유리네집>이었다.
작년 봄, 어느 모임에서 저녁 식사를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 날 처음 뵙게 된 이선동 선생님, 시인이며 수필가이다. 그보다 <유리네집> 사장님이다. 따끈따끈한 책 한 권을 나눠주시던 겸손하신 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후 신문과 블로그 등에서 이선동 선생님의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책꽂이에 모셔 둔 ⌜할배! 우리 어디가요?⌟를 집어 든 것은 올 봄 코로나로 두문불출하던 때였다. 선뜻 외출도 꺼리며 몸조심하던 때, 여행은 사치였고 그럴수록 집 밖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고 싶을 때였다.
- 글쓰기는 언제부터
저는 글쓰기를 학습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께서 보릿고개로 초근목피의 삶을 이어오던 모습을 보고 자랐지요. 하지만 저녁을 먹고 살평상에서 누워 하늘을 보면, 처마 끝 초롱한 밤 별빛이 쏟아지곤 했지요. 그때는 목구멍에 풀칠하는 게 최우선이라 국민학교도 그렇고 중학교도 학교를 마치고 오면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땔감을 먼저 해 오곤 하였지요.
중학교까지 부모의 도움으로 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을 다니며 공부했지요. 언제부터인가 딱 가름하기가 뭣 하지만 그때부터 싹이 자랐겠지요? 내 삶의 경제적 토대를 어느 정도 쌓은 후인 50대 중반 이후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어쩌면 그때부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등단 및 문학과 관련한 수상경력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많이 읽으면서 메모도 하고 틈틈이 글을 써서 모았습니다. 그것이 모여서 무언가 나의 내면 밖으로 표출하려는 생각들이 나를 우물 밖으로 꺼내 주었지요. 2019년 5월 샘터문학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진실의 붓대가리」로 시 부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어요. 국민학교 4학년 때, 청도군 교육청 주관으로 실시한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여 희미한 기억이지만 「보리타작」이라는 동시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리비안라이트] 책을 부상으로 받았습니다.
- 현재 작품을 쓰고 있으시다면 어떤 작품인지
아직은 세상 밖으로 내놓을만하게 다듬지 못했으나 수시로 노트를 펼쳐 퇴고하면서 시 150 여점 모으고 있습니다. 곧 세상 밖 친구들을 만나게 하고 싶어요. 또 고향 친구들과 회갑 지나고서야 처음으로 블라디보스톡과 연해주를 다녀왔어요. 연해주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역사의 땅이며, 독립운동의 숨결이 숨 쉬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 픽션과 논픽션으로 「아무르강에 꽃핀 자작나무 사랑」이라는 가제로 소설을 집필 중입니다.
- <할배! 우리 어디가요?> 중국 여행 중 힘들었던 일은
11살 손자와 함께한 23일간의 대장정이었어요. 패키지여행처럼 누군가 일정을 짜 주는 게 아니잖아요. 여행은 돌발적인 일들이 무수히 일어나기 때문에 약 2~3일 전에 현지에서 직접 결정을 내리고 예약을 하고 또 실행해야만 하는데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싶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손자가 출발부터 복통으로 배 아픔을 호소했는데, 처음에는 저녁에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싶었어요.
하지만 여행 기간 내내 장염이라는 고통을 껴안고 23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해준 손자가 대견스러웠어요. 거의 매일 배가 안 아픈 날이 없었지요. 특히 열하에서 역사 탐방하는 날과 북경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통증은 장장 8시간이었어요. 북경역에 도착해서 미리 대기시켜 둔 엠블란스를 타고 검사 중, 현지 의사분과 의학용어가 잘 이해되지 않아 외교부 통역 서비스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관찰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열하에서 역사 탐방을 취소하고 열하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도움은 결코 잊을 수가 없지요. 언젠가 그 고마움을 꼭 보답하고 싶어요.
23일간 여행을 하다 보니 손자는 처음 겪는 혼자만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곁에는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말동무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바로 손자의 친구가 된 거죠. 항상 할아버지 어깨에 그놈의 육체를 매달고 다녔어요. 저는 그게 많이 힘들었지만 또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손자의 마음의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나 자신도 모르게 불쑥 짜증을 낸 적도 있지만 늙은 할아버지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마음의 언어로 다가와 준 게 너무 고마웠답니다.
|
 |
|
ⓒ 경북문화신문 |
|
- <유리네집>을 운영하면서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면
<유리네집>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조그마한 밥집이지요. 저와 아내는 주인이면서도 종업원이지요. 많은 분들이 이용해 주시고 맛있게 드셔서, 기쁨으로 삼으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앞치마 입고 그릇을 닦으면서 문득 시상이 떠오르면 스마트폰 메모장을 꺼내 메모도 남기곤 한답니다. 특별하게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단골도 많지만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그 만남 속에서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아침 6시경 출근하여 가게 청소를 끝내고, 사우나에서 운동 후 9시쯤 가게로 돌아와 1시간 동안 나의 시간을 갖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고 작품 활동도 하지요. 물론 퇴근 후 서재에서도 하지만 주로 가게에서 많이 하는 편입니다.
- 선생님의 문학과 기행이란?
글쎄요! 철학적인 물음을 주셨네요. 문학은 삶의 지혜를 찾는 것이지요. 특히 인문 고전은 지혜이며 인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자신도 모르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고전뿐 아니라 여러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의 양식이 되어 가슴에 쌓여요. 그래서 문학과 기행은 우리네 삶의 길잡이며 스승이라 생각됩니다. 독서는 아무리 하여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제가 손자에게 바랬던 사랑도 바로 선인들의 지혜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사랑이기도 하니까요.
환한 웃음으로 배웅하시는 이선동 선생님의 미소가 그려진다. 무릇 인생은 한방이 아니다. 한 장의 책을 넘기며 손끝으로 넘긴 수많은 페이지가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고 발전한다.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먹고사는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참다운 인생을 밝히는 초롱불이 될 수도 있다. 20년쯤 지나, 그의 손자 김호성 군이 어떻게 살아갈지 미루어 짐작되는가? 코로나19로 세상은 더 자주 조용하고 예술은 갈수록 깊어질 터이다. 누군들 읽고 쓰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
 |
|
ⓒ 경북문화신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