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은 4,5년 내에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생태계가 무너져 버린다"
"아직 늦지 않았다. 산업도시인 구미는 산업생태계를 잘 아는 사람이 리드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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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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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생가 바로 앞집이 저희 집입니다. 현재 민족중흥관이 들어선 자리죠. 박정희 대통령은 설날, 추석 명절마다 생가에 오셔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때마다 골목에서 어른들과 함께 저도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를 했죠. 당시 코흘리개 아이었던 저는 어른이 되면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해야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8월 국민의힘에서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김석호 위원장의 어린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 때문일까. 김 위원장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발전은 구미의 발전이며, 구미공단이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이 바로 구미와 대한민국의 발전임을 깨달았다. 금오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생산현장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산업생태계를 터득하는 등 자연스럽게 산업전문가로 성장, 구미공단 기업의 생리를 김 위원장만큼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꿰뚫고 있다. 그가 구미산업전문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구미에서 태어나 광평초, 구미중, 구미전자공고, 금오공대 등 지역에서 학교를 졸업하면서 구미의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구미의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구미에 대한 애정과 열정,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선거에서 7번 낙선한 덕에 그를 한번이라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로 통한다.
특히, 그는 구미공단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새로운 공단 조성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을 해왔다. 지난 1998년 OB맥주가 광주로 이전할 때 이를 빌미로 4공단을 유치했다. 경북청년회의소 직전 회장이었던 그는 ‘구미경제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도로 집회가 허용되지 않은 당시에 중앙로를 막고 구미역광장에서 집회를 열어 전국여론을 조성하는 등 결국 4공단의 유치를 이끌어냈다. 이후 2006년 모바일 산업을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이외에도 경북도의원 시절, 신평동 금오공대 자리에 경북컨벤션센터와 한국전자섬유박물관을을 제안, 예산도 확보했지만 규모가 축소된 구미코가 현재의 자리에 들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컨벤션센터는 교통접근성이 성패를 좌우하는데 나들목주변이 아닌 곳에 위치하고 규모가 적다보니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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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대기업의 잇따른 이탈과 신규투자 유치의 난항 등으로 구미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원인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대체산업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특히 전자산업은 4,5년 내에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생태계가 무너져 버린다”며 “산업도시인 구미야말로 산업생태계를 잘 아는 사람이 리드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5공단에 기업유치가 되지 않은 것은 땅값의 문제가 아니라 양질의 일감이 없기 때문이란다. 왜관, 성서 등 인근의 공단을 보면 분양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김 위원장은 “양질의 일감을 줄 수 있는 원청기업을 유치하고 이와 더불어 4차산업과 공항산업을 접목해 관광, 문화 산업을 육성한다면 자영업 1,2만개를 만드는 등 구미의 경제파이를 키워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