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연구소 구미지회(지회장 전병택, 이하 민문연)에서 독립군 허형식 장군 서훈 추진에 나섰다. 지난 2일 민문연 소속 장기태 허형식 장군 서훈 추진위원장은 대구지방보훈처에 구미 출신 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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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한 장기태 추진위원장은 “지난 2006년 서훈을 신청했음에도 받지 못한 것은 직계 후손이 없다는 이유와 만주지역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재평가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번에 친조카인 허창수씨와 함께 관계자료 등 공적자료를 확보하여 서훈 신청을 하였기 때문에 이르면 이번 8.15 광복절에 서훈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또한 “허형식 장군은 이미 34살이던 1942년에 전사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북한 정권 수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허형식 장군의 일대기를 실록소설로 써주신 박도 선생과 논문자료를 제공해준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장 추진위원장은 작년 10월 왕산 허위 선생의 순국 추모제에서 선생의 5촌 조카인 허형식 장군을 언급하면서 반드시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허형식 장군은 1909년 11월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에서 태어나 부친인 허필 선생을 따라 1920년 만주로 이주하여 1931년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사건을 주동하였으며, 허 장군은 1942년 소릉하(邵凌河)계곡 만주국 토벌대와 전투 중 전사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12지대 정치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전투(조주현 풍락진 기습공격, 일본 의용대훈련소 및 비행장 습격 등)에서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다.
특히, 장군이 사망하기 전인 1942년 8월경 당시 소련에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 3영장(소련군 대위계급)으로 임명하면서 소련으로 월경하라는 당위원회의 지시를 거부하고 만주에 잔류하여 항일투쟁활동을 계속하였다. 장군이 사망한 후 시신의 일부를 경안현경찰서와 삼강성경무청 등 일본관동군의 치적용으로 훼손하였으며, 남은 시신 일부는 헤이룽장성 경안현 철봉령 소릉하계곡 입구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왕산 허위 선생과 그의 5촌 조카인 허형식 장군 등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집안이었지만 사회주의 사상 문제로 늘 포상 등에서 제외되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미는 이제까지 독립유공자에 대한 소홀함이 많앗든것같습니다 장 기태 위원장께서 앞장써서 하시는모습이 정말보기좋습니다 나라를위위 구미를위해 항상 얘써주십시요 장 기태 화이팅
04/14 10:43 삭제
장기태 추진위원장 얼굴보니 반갑고,독립유공자가 대우받는 세상이 빨리왔으면 좋겠다.
04/09 18:05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