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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사찰①]‘보천탄가에 보천사라는 절이 있었으니...

안정분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22일
대웅전 석조여래좌상 보물 지정
보천(寶泉) 샘의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구전 전해져

ⓒ 경북문화신문
구미·선산 지역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곳으로 일찍부터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주목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지역에는 크고 작은 절터와 석탑, 불상, 석등 등 통일신라는 물론이고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많은 불교유적과 유물을 볼 수 있다. 한 지역에서 이렇듯 조밀한 불교유적의 분포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드문 경우다. 본지에서는 신라 불교가 전래된 성지로서 구미·선산 불교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역사를 간직한,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사찰을 둘러본다. <편집자주>
ⓒ 경북문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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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꿔진 사찰
곳곳에 비구니 스님의 손길 묻어나 

해평 구미청소년수련원에서 골짜기를 따라 1km쯤 달렸을까. 보천골이라는 골짜기의 가장 높은 곳까지 가면 보천사(주지 지민 스님)가 나온다. 아담하게 잘 가꿔진 사찰은 부지런한 스님의 보살핌이 묻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절의 한 켠에서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는 비구니 스님이 보인다. 기와를 얹은 아기자기한 담벼락과 정원, 단청의 풍경 등에서 여성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보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 무렵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천사는 미석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남쪽만이 터져 있어서 곧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다. 가장 위쪽에 위치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5층석탑과 설법전이 있으며 오른쪽에 삼성각, 양쪽에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가 있다. 대웅전을 올라가다 보면 대만의 성운대사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인생의 열두 가지 질문’이 적힌 안내판이 있다. 또 대웅전 우측 잔디밭에 세워진 비석에는 ‘일일시호일’이 새겨져 있다. 이는 중국 운문선사가 말한 것으로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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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양식 석조여래좌상
팔작지붕, 다포양식, 화려한 단청, 정면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에는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은 화강암으로 이뤄졌으며 눈과 코가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수되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비교적 완전한 형태다. 나발의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있지만 머리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얼굴은 둥글고 단정하다. 체구는 작고 평면적이며 왜소한 모습이다. 오른 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해있고 왼 손은 배 부분에 놓은 모양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존명이 석가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통견(通肩)인데 문양은 풍화로 인해 명료하지 않지만 본래는 상당히 미려(美麗)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려하게 흘러 양쪽 무릎을 덮으면서 뒤로 퍼졌고 가슴에는 띠 모양의 매듭이 있다.

이 불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와 부처가 앉아 있는 대좌(臺座)이다. 광배는 돌 하나로 된 주형(舟形)으로 머리, 몸(두신광 頭身光)으로 구분되는데 원 안에는 넝쿨 무늬가 있고 머리 광배의 중심부분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광배의 곳곳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있으며 아래쪽에는 향로가 음각되어 있다.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광배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약간의 손상과 전체적으로 마멸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뿐 거의 완전한 모습이다. 대좌는 상중하 세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윗부분에는 반원형태로 활짝 핀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중간과 아래 부분은 팔각형으로 각 면에 연꽃무늬, 구름문의,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광배의 향로나 대좌의 양식, 좌상의 의문(衣紋) 등 각각의 양식 수법은 통일 신라 시대인 9세기 중엽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따라서 조성연대는 미상이지만 9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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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사에 전해오는 구전
지난 30년간 손수 절의 살림을 일군 회주 법진 스님은 일제 강점기 때 명주실한타래 깊이로 묻었다는 보물이 발굴된다면 창건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지 않겠냐고 석조여래좌상의 조성시기인 통일신라보다 더 앞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터를 기부한 광주이씨 후손이 다녀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상과 관련해 구전되어 온 이야기인 듯하다. 이 집안에는 새신부가 들어왔는데 새신랑이 집을 나가고 없었다. 광주이시 집안에 새신부가 들어왔는데 새신랑이 집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자 새신부는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 스님을 찾아 어떻게 하면 신랑을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마당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세 개중 하나를 깨버리면 남편이 돌아온다고 했다. 하인들을 시켜서 깨뜨렸더니 바위에서 피가 나왔고 남편은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를 듣고 신기해 집안 어른들이 이 바위 돌을 깨뜨려 불상을 만들게 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천사의 역사를 짚어보면 절 이름만 전해오다가 1959년 불상이 발견되면서 해평동 신도들이 합심해 보호각을 신축하고 매몰된 불상을 발굴해 현 상태로 수습했다고 전한다. 석불주위에는 무수한 옛 기와와 주춧돌 등이 산재되어 있었다. 석불을 발굴할 때 석불 바로 앞에서 금동불입상 일구가 출토됐는데 당시 관리자가 서울로 보낸 후 소식이 없다고 한다. 1979년 문화재보호 조치로 정부에서 보호각을 중건했고, 이후 1986년 회주 법진 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오면서 중창, 절의 살림을 일궈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조선시대 기록인 선산도호부 읍지 <일선지> 방리편에 ‘보천탄가에 보천사라는 절이 있었으니...’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천탄은 현재의 절 인근의 낙동강 나루터를 말한다. 이 골짜기의 명칭이 곧 보천으로 전해오고 있다.
또 고려 25대 충렬왕(1274~1308)의 아들 왕소군이 신병이 있어 이곳에서 요양하며 보천(寶泉)이라는 샘의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하여 보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_『동국여지승람』, 『일선지』
   「선산해평동석조여래좌상」(진홍섭, 1963)
    『선산지구고적조사보고서』(정영호, 단국대학교 박물관,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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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개성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희소성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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