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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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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코스는 고무공장입니다. 다들 라텍스 잘 아시죠?”
‘고무공장? 라텍스? 쟤가 뭐라나. 고무공장이라니, 그것도 관광인가?’
슬슬 기분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감기 끝에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약을 먹어도 에어컨바람에 있는지라 콧물이 끊이지 않았다. 코는 헐어 빨갛게 짓물러 있었고 내 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국인종업원이 대부분인 그 라텍스 공장은 침대 메트리스와 베개 등을 팔고 있었다. 작은 방으로 안내하더니 라텍스 좋다는 설명을 시작했다. 쇼핑센타에 데려가지 말라는 부탁으로 두 배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가.
기분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고 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보던 그 가이드의 표정도 순간 싸늘하게 굳고 있었다. 모두들 웅성웅성 왈가왈부했지만, 대충 설명을 듣는 척 했고 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공장 관계자가 채 설명을 마치지 못하고 끝냈다. 물론 우리 중 누구도 물건을 사지 않았다. 가이드의 표정은 더 싸늘해 졌고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 일정에 이상기류가 흘렀다.
뭣도 모르면서 집을 벗어나 우리는 가이드 하나만을 믿고 위험천만하다는 태국 땅에 있었다. 가이드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우리에게 득 될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나는 올라오는 화를 애써 누르고, 또 누르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애썼다.
마치 바퀴벌레처럼, 낮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밤이 되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별이 쏟아지다’라는 뜻을 가진 파타야는 밤하늘에 별이 없다고 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들을 유혹하느라 해만 지면 몽땅 땅으로 내려앉는다나어쩐다나. 매춘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6조원이 넘는다니 법으로 허용해 줄만도 하겠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원색의 조명아래 즐비한 여자들, 아무래도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다. ‘봐도 후회하고 안 봐도 후회한다는 라이브쇼’ 가이드는 의미모를 소리만 해대더니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언질하고 우리를 허름한 건물로 들여보냈다.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다. 스모그가 가득하고 음침한 분위기가 심장을 오그라뜨리는 곳이었다. 한 가운데 사각링 같은 무대가 있고 사방으로 구경꾼들이 빽빽이 앉아있었다. 무대 외벽으로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고 스피커에서 여자의 교성이 흐르는가 싶더니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에 걸린 여자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먹잇감을 덮치고, 퍼덕거리는 여자를 짓눌러 음미하는 모습이 좀 과장되다 싶었다.
간접적인 행위인지라 다소 긴장감이 돌기도 하고 아주 미흡하나마 예술성이 엿보이는가 싶기도 했다. 잠시 어둠으로 관객의 눈을 가리는 가 싶었다. 광백의 순간, 긴 생머리의 늘씬한 아가씨가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채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떠올리려니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태국여자처럼 구리 빛 피부는 아니었다. 조명 탓인지 제법 하얀 피부에 적당한 크기의 예쁜 가슴을 갖고 있었는데 교태 섞인 걸음걸이로 무대를 한 바퀴 돌아서는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는 이리 저리 관객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운동모자를 쓰고 있는 검은 티셔츠 차림의, 30대 후반쯤 일까? 동양인인데 일본인 일까? 아니 한국인이었다. 한국말이 들렸다. 관객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고 패키지여행인지라 부부가 많았다. 옆에 부인이 있었던지는 모르겠다. 있었다면 제 남편을 그렇게 젊고 예쁜, 더구나 홀딱 벗고 있는 아가씨의 손에 이끌려 나가게 두지는 않았으리라.
어쨌거나 여자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오른 남자는 의자에 앉혀졌다. 그 무릎위로 여자가 걸터앉았다. 잠시 주춤거리긴 했지만 여자의 손에 벗겨지는 셔츠를 내버려두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남자의 두 손이 봉긋이 솟아 오른 젓가슴을 덮었다. 내 시력은 좋지 못하다. 밝은 곳에서도 황사 낀 도시 속을 보는 것처럼 뿌옇게 보이는 것이 예사인 난시가 내 눈이다. 그런고로 내가 본 것이 정확하다는 단언은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