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기를 반복하던 그 남자의 손놀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국땅에서 낯모를 사람들 앞에서의 행동은 제약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어 거기가 어디인지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걸 잊었는지 그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듯 했다. 여자는 상대의 몰두에는 아랑곳없이 과장 섞인 엑스터시를 표현했다. 황홀감을 못 이기는 듯, 남자의 손을 움켜쥐고 자신의 은밀한 곳을 향해 돌격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몸을 뒤틀던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몸에 걸쳐진 마지막 껍질을 벗겨냈다. 그리고 또 그와 동시에, 구경꾼의 비명소리가 일제히 쏟아졌다. 세상에! 관객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가 채 끊기기 전 여자는 남자의 눈앞으로 돌아 섰다.(저 남자 이제 클 났다. 기분이 얼마나 더러울까) 때로 용기는 만용이 되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법이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나무랄 데 없이 균형 잡힌 몸매에 가슴이 유난히 예쁘던 그 여자의 은밀한 곳에는 숲을 헤쳐 발견할 수 있는 둔덕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무기하나가 버젓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도망치듯 내려가는 그 쪽 팔리는 남자를 대신하듯 진짜 여자하나가 등장해 그녀(?)와 나란히 섰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눈앞에서 벌어진 믿지 못할 광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몇 번의 허접한 공연이 더 이어졌던 것 같다. 아무리 봐도 10대 중반은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여자아이들이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서로의 벗은 몸을 그 미소로 가려주며 장난치듯 움직이는 모습, 몇 명의 여자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예의 헌팅을 시작하자 손 사레를 치며 잠시전의 그 난감함을 떠 올리는 것 같은 남자들, 남녀가 삽입한 채 에어로빅까지 하는 믿지 못할 모양새가 둥둥 떠다니는 부초같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어서 나가고 싶다는 정신이 들 때 쯤, 우리나라의 각설이 복장을 한, 그러나 아랫도리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한 남자가 옆구리에 북을 메고 나타났다.
미리 언급했지만 내 시력은 평균이하이고 배경은 스모그가 잔뜩 깔린 어두침침한 실내인지라 뭔가 뚜렷이 보이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불쌍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왜소한 남자였다. 얼굴에 커다랗게 눈물방울을 단 느낌의 그가 북을 치며 객석을 헤집고 다니며 여자들 앞에 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손 사레를 치며 고개를 돌리는 아줌마 무리와 가엽기도 하고 장난스럽기도 한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이층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고개를 외로 꼰 채 생 비명을 질러대는 소동이 벌어졌다. 옆에 앉아있던 정인이가 내 오른쪽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고양이 만난 쥐 마냥 떨기 시작했고 그 옆의 은화는 상황을 모면하려 심장을 비틀었으며 구역질을 시작한 향이를 달래며 미자는 있는 데로 인상을 구기고 보호색을 펼쳤다.
나는 왼편의 동행을, 마땅하지 않아도 오랜 세월 샴쌍둥이처럼 살아왔던 친구들의 상황을 모두 끌어안았다. 건드리면 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죽은 듯이 꼼짝 않는 벌레처럼 눈과 귀를 막고 최대한 몸을 구부렸다. 평소에는 따지기를 주특기로 삼는 내가 허락도 없이 제 멋대로 옵션을 끼워 넣고 지불을 요구한 가이드에게 따지지 못했음을 한탄했다.
그렇게 겁먹은 꼴이라니, 마뜩찮음에 마주서면 강도라도 때려잡을 듯 하던 기세등등함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몸을 떨 기력도 없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꼴이라니, 그 나이에 못 볼꼴이 어디 있다고 고개 돌리는 비겁함이라니, 뭐 그리 백옥 같은 몸이라고 먹고 사는 방법으로 택했을 귀천 없는 직업을 허접하다 단정 짓고 그 허접함에 눈길이라도 닿을세라 전전 긍긍 하는 오만함이라니.
우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로의 손을 움켜쥔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저 이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술이나 한잔 하면서 잊어버리라는 가이드의 묘한 뉘앙스가 속을 뒤집었다. 그 순진한(?) 가이드는 건장한 청년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주선할 수도 있다는 자신의 친절을 박장대소로 응답했던 우리의 무시를 못 알아들었다. 이 진 빠진 상황에 술이라니, 그것도 건장한 청년들과. ‘미친놈’
일찌감치 호텔로 들어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수습하느라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러지가 고개 디밀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다만 역류하는 위산이 식도에 머물러 있음을 혼자 걱정했다. 하루를 되돌아 볼 때 산호섬을 굳이 빼야할 빡빡한 일정 같은 것은 없었다. 관광지 하나를 빼고 선택관광이라며 돈까지 더 받고 구경시킨 그 지랄맞은 19금 공연을 보고 호텔로 돌아온 시간도 9시 이전이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일지처럼 기록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