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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원
마을 활동가· 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 선주문학회 회장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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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 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른바 대선 정국에서 애국이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실로 많은 대선 주자들이 입만 열면 애국이요, 국민 사랑을 외쳐왔다. 그것도 때마다 줄기차게 들어오다 보니 이젠 식상하다 못해 자괴감마저 든다. 언행의 불일치는 물론이요 허황된 소리인 줄 알면서도 그 입 다물라고 반박 한 번 못하는 국민들. 명절 연휴 집에 있을 때 이 기막힌 말 앞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국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도대체 나라는 어떤 의미이고 나라 사랑은 또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의 정국은 서로가 판을 짜고 자기 편끼리 혹은 상대편에 대한 험담과 악의적인 선전에 혈안이 되어있다. 국가 지도자의 자리를 잡기 위한 집념과 함께 상대방을 끌어내리기 위한 음모기획, 혹은 협잡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추잡하고도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 쌈박질의 과정을 모든 매체들이 생중계를 해대고 있다. 종잡을 수 없고 한참 후에나 진위가 밝혀질 ‘한탕’들이 너무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국민을 위한 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애초부터 국민은 안중에 없었고, 국민을 무시하고 출발한 싸움이니 옛날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탄할 성질도 아니다. 즉슨 그저 구경만 하는 국민들 역시 변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니 이판사판인 셈이다. 억울하단 말도, 시끄럽단 말도, 황당하단 말을 하는 이는 없어도 어느 한쪽에 붙어서 옳고 그른 셈을 하기보다는 덩달아 흥분하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만 제법 되는 것 같다.
권정생의 시는 역설적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즉 세상이 평화로우면 애국애족이 필요 없다는 정도로. 나라를 사랑할 일이 없어지면 꽃과 연인, 자연과 무지개를 사랑하고 나아가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니 젊은이들에게는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렇게 되면 나라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온 세상 우주는 아름답고 따사롭게 될 것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세상이 쉬 올 것 같지 않으니, 역시 젊은이들은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시인은 시를 거두어들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시인은 우리에게 진정한 애국과 애족을 독려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국민이 뽑은, 국민이 권리를 위임한 대표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보고 뻔뻔함과 막말로 국민들을 마구 대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자기들이 아무리 정치판을 마구잡이로 뒤흔들고 국민들의 삶을 팽개치고 권력 쟁투에만 몰입해도 두려운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받아 연명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 엉망진창이 된 국토의 환경, 실업에 떨고 있는 청년들의 몸부림...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염원을 무시해도 대권을 향한 자신의 길은 아무 지장이 없다고 여긴다. 과연 국민이 그들을 제어할 힘이 없는 것이다. 분명 선출은 했으나 그들의 그릇된 행위와 폭거를 견제할 권위나 통제할 강제력이 없다. 선거 때는 일순 자유로운 듯 보이나 선거가 끝나면 바로 우리에 갇혀 이들의 눈치만 보는 사람들, 국민.
어느 편엔가 줄 서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건전한 논의보다 파쟁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왜 만날 그렇게 편가르기에만 열중하는가. 꼭 내 방식대로 되어야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뜻이 같은 이에게 대권을 쥐어 준들 내 의도대로 나라가 굴러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줄창 졸장기만 두다가 주변 인사 몇몇이 오라를 받음으로써 된서리를 맞고 무너져 내린 지도자가 어디 한 둘이던가. 과욕만 앞서 반성없는 좌충우돌로 시간을 보내다가 임기가 끝나는 것이다.
무엇이든 자기편의 입맛에 따라 정하고 심지어 진리마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국민이 뭣처럼 취급당하는 이 시기에 진정 우리가 할 일은 편을 버리고 의연히 서는 것이다. 눈치와 줄서기로 그 밥에 그 나물을 재탕 삼탕할 게 아니라 주인으로서 필요한 심판권을 쟁취하고 심판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애국·애족자인 양 하면서 너도 나도 제몫 찾기에만 혈안이 되면 결국 《애국 애족자가 다 없어져야》 이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몸과 정신이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나라의 주인으로서 끝까지 자신의 삶터를 지켜야 한다. 맑은 정신으로 심판이 필요할 때는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때를 기다려 대권의 심판을 제대로 하는 게 주인으로서의 애국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