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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원 마을 활동가·구미시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선주문학회 회장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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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BTS와 오징어 게임이 K-콘텐츠의 위상을 한껏 끌어 올리며 바야흐로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강국의 모습을 실감하는 중이다. 이에 발이라도 맞추는 듯 얼마 전 소극장 공터다에서는 구미 문화도시 시민 포럼이 있었다. 중년층으로 구성된 풋(foot) 소리 공연이 오프닝으로 흥을 선사하고, 시민참여와 거버넌스를 주제로 지금종 강릉 문화도시지원센터장의 강연과 함께 참여자들의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지 센터장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참여한 경력 많은 전문가답게 다양한 정보와 좋은 사례를 차근차근 제시해 주었고, 참가 시민들은 강연과 포럼을 통해 문화도시로 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참여와 거버넌스가 큰 숙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의 입지는 숲이 우거진 산을 배경으로 개울과 탁 트인 농경지를 바라보는 배치가 보편적이다. 이는 예로부터 마을은 주변 경관으로부터 물질적ㆍ정신적 자양분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는 교육기관인 서원이 있고, 충효를 기리는 기념물과 안녕을 비는 마을 수호목, 마을 주민들이 평안을 기도하는 사원 등이 자리했다. 무을면 무등1리도 그런 마을 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평범한 마을 중의 하나인 무등리에도 적잖은 문화적 자산이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주위 경관이 좋고 산세가 수려하여 무동(茂洞) 혹은 마을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무동(無洞)이라 하였고 후에 무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릉(김천) 감문이 전란으로 어지러울 때 그 난을 피해 반상의 차별이 없는 무등(無等) 마을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등급이나 계급을 뜻하는 등(等)이 없는(무) 마을이라 일컬어졌으니, 빈부나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차별없이 화평하게 살아간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연로한 마을 분들은 아직도 서원의 샘을 뜻하는 ‘선샘’이란 말을 쓰고 있고 장소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 샘과 바로 이웃한 곳에 무너진 주추가 있고 집터가 남아있는 걸로 보아 서원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나 확인작업은 더 이상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이런저런 내용을 들어 알고 있는 무등 탑지(茂等塔址). 탑골이란 지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탑이나 암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5년 전 탑지에 대해 지표조사를 한 기록은 있지만, 조사를 시행한 기관이나 지표조사 결과보고를 받은 기관 어디에도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애석한 일이다.
마을 남쪽 불당산(섬밭골)에 높이 9척(尺), 넓이 7척(尺), 두께 4척(尺)의 암석이 6평 넓이 반석 위에 자리하고 있는 선바위. 이는 정희량난(鄭希亮亂)에 대공을 세운 황도희(黃道熙) 장군을 기리는 기념물이라고 전하나 그에 관련된 아무런 표시가 없다.
별것 없을 것 같은 평범한 마을에도 이처럼 많은 유형무형의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제대로 찾아 정리하고자 하지만 자료확보나 더불어 얘기할 곳이 마땅찮고 어쩌다 부탁을 한다 해도 자료 몇가지 소개해 주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이러니 시간이 지나면 전해오던 이야기마저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요즘의 세태는 누구든 어떤 목적을 두고 행동하거나 눈앞에 분명한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므로 전래되는 얘기를 나누면서 보존하거나 나아가 새롭게 활용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심지어 문화재와 관련된 업무를 보는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심드렁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지이다.
문화를 전승하거나 새로이 창조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의 출발점은 ‘얘기를 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문화의 보고라 할 만한 농촌뿐 아니라 도심이나 아파트 단지, 공단 등에도 사라져가는 얘기와 살려내야 할 얘기는 많을 것이다. 선주민뿐만 아니라 이주민들 역시 많은 얘기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있어야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렇게 이야기가 생성되어야 비로소 문화도시의 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옛날 얘기만 그 대상이 될 것인가. 살아가면서 아픈 게 무엇인지, 무엇이 삶을 불편하게 하는지,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자잘한 일들을 풀어내는 일상의 소통이 문화가 될 것이므로, 그 얘기를 듣는 곳이 공론장이고 그곳에서 문화도시는 기지개를 시작할 것이다.
금번의 시민 포럼이나 당국자의 문화도시 구미에 대한 언급은 시민참여의 마중물 역할을 하리라 본다. 결코 시민들을 구경꾼으로 두어선 안 되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능동적으로 표출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시민을 으뜸되는 문화의 생산적 소비자로 만드는 게 바로 문화도시 구미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