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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원
마을 활동가·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선주문학회 회장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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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를 끔찍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바이러스는 흔한 감기에서 코로나 19까지 인간에게 온갖 질병을 선사하는 생물적 존재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는 바이러스란 말만 들어도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생물적 존재 외에 컴퓨터 네트워크 세계에도 바이러스가 있다. 이는 인간이 발명했고 인간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것이다. 정작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나 문화, 생각의 세계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정신적・행동적인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만드는 모든 문화요소가 이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바이러스든 전파력만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만든 단어 밈meme은 모방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왔다고 한다. 밈은 모방 등의 방법으로 문화를 전달하는데, 거의 모든 문화 현상이 밈의 보기가 될 수 있겠다. 밈은 차츰 마음과 문화에 새롭게 접근하는 밈 과학으로 발전하고,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전염이 되어 여론이나 유행같은 대중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다. 친구의 영향으로 청소년들의 흡연이 늘어난다든지, 아이디어나 상품, 행동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현상을 일종의 사회적 전염으로 보는 것이다. 행복감도 바이러스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된다는 연구가 있는데, 내가 행복하면 친구는 25%, 친구의 친구는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5.6%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문화 상상, 多모디”는 지난해 12월 문화도시 시민토론회 때의 슬로건이다. 쉰여 명의 시민, 퍼실리테이터와 운영관계자 그리고 약간의 내빈 등이 모였으나, 코로나 감염자 급증으로 인해 새마을 테마공원의 글로벌관 다목적홀의 공간이 조금은 크게 보인 날이었다. 문화도시 지정을 염두에 둔 행사로써 시민들에게 명실공히 “문화도시 구미”로의 메시지를 처음 전달한 모임이기도 했다. 그래서 진행자는 지속적으로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고 시민의 문화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요구하였다. 세 시간 동안 시민들은 기획된 문제를 수행하느라 조금은 뜬금 없었겠지만 그런대로 구미문화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보다 앞선 12월 3일에는 부시장과 관련 국‧과장, 담당 계장 등 80여 명이 참석하여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추진을 위한 ‘문화도시 행정협의체’를 구성한 바 있다.
문화도시는 시민이 만든다는 선언은 참으로 가슴에 와닿고 제대로 사업이 추진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화는 시민의 참여와 공감대가 중요하다는 퍼실리테이터의 말은 분명 사족이었다. 문화 자체가 그 터에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의 양식이고 그들 스스로가 누리고 있는 것이므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은 모두 시민의 몫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지원 정책사업 준비가 이번 모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사업을 과연 시민이 주도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행정을 넘어 시민과 호흡하는 문화도시 구미를 만들겠다는 포부나 부시장을 단장으로 한 협의체 구성 등 부산한 움직임 속에는 어디에도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책입안자들은 보통 새로운 것을 창안하려는 의도로 사업 기획을 하는 것 같으나 실행 부분을 보면 역시 그게 그거다. 시민과 함께 해야 할 공론장은 강연자의 설명으로 채워지고, 시민들의 상상을 바탕으로 진행해야 할 토론은 뜬금없는 선택을 몇 가지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럴 바에는 시민들의 주제 발표나 잘 된 지역의 사례를 총총히 모아 검토해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 사례들 속에는 우리 지역에 맞는 활동도 많이 있을 것이다. 좋은 성과를 거둔 사례는 조금 변형하거나 그대로 시행해도 무방하리라. 부끄럽게 여기거나 모방을 감출 이유는 없다. 우리 시민들이 즐겁게 향유하고 더욱 발전시켜나가면 될 일이지 않은가. 모방문화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준 높은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단 말인가. 시민들 의견을 구하는 공간과 시간이 적잖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공간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보듬는 문화를 만들어 내고 긍정적인 것은 파급・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문화에 대해 프로젝트형 설계를 하든, 문화자원을 공유하는 활동을 하든 문화도시를 위한 어떠한 계획일지라도 시민들 개개인이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구미 문화도시 만들기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지, 그리고 성취감으로 가득한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문화란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과정이지 결코 문화메커니즘에 종속된 활동이어선 안된다. 그 과정을 확산시키는 바이러스를 시민들에게 전염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구미시에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