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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세상읽기]문학의 과제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30일
↑↑ 서재원 선주문학회 고문
ⓒ 경북문화신문
“이 책의 인세 수익의 일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기반을 두고 시베리아 호랑이와 아무르표범을 보호하는 비영리 단체 ‘피닉스 펀드’에 기부됩니다.”

요즘 한강의 소설과 함께 많은 이들이 읽고 있는 김주혜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책나래에 씌어있는 말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한 단면을 알 수 있게 해서 내심 반가웠다. 사라져가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에 인세 수익을 기부하다니. 그런 발상을 가진 우리나라 작가를 찾아보기 어려웠음이다. 식견이 좁은 탓도 있지만, 삶의 바탕을 들여다보는 문학조차 자기중심적 사고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는 꽤나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독립운동에 대해 듣고 자라면서 한국 역사를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인식했다는 설명도 퍽이나 흥미를 끌었다.

옥희를 비롯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한말의 풍경, 일제 강점기 그리고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새삼 더듬어 보게 했고, 사랑이나 배신 등 흔한 소재이면서도 작가의 특이한 글솜씨는 그 긴 소설을 단박에 읽게 할 만큼 출중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기녀가 되기로 한 옥희는 연화와 월향을 만난다. 이들은 단이와 함께 경성으로 가 배우로서, 가수로 화려한 시절을 보내기도 한다. 옥희는 운명처럼 사냥꾼의 아들 정호를 만나지만 정작 인력거꾼 한철을 사랑하게 된다. 정호는 좌익계열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맡은 바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내지만 결국 독립된 조국에서는 친일혐의로 사형을 당하고 만다. 한철을 향한 옥희의 사랑은 신분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지만 옥희는 정호의 사랑조차 거부한다. 단이는 죽고 사랑하는 이와 친구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된 옥희는 제주에서 해녀로 살아가며 지난 일들을 반추한다.

현실과 타협하거나 아니면 공동체의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들은 종종 서로를 이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까지 적절한 합리화를 앞세워 버리게 된다. 대부분이 국권을 잃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요즘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걸로 보아 인간의 욕망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잘 포착한 작가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도 바로 이러한 보편성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시대와 관계없이 두루 통하는 욕망이란 보편성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자못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는 명보에게 성수는 그 일의 무의미함을 설파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부침하고 병합되었지만 후대의 번영이나 안녕과는 무관하며, 일본의 땅이 된 조선의 현실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고구려나 로마제국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말한다. 이에 명보는 위험에 처한 어린아이를 예로 들면서 언제 죽어도 죽을 것이니 내 알 바 아니라는 태도는 정의롭지 않다고 반론한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정하는 것은 논리 영역 밖에 있음을 강조한 후 성수의 집을 나선다. 성수는 일본인 세력가와 두터운 친분을 맺고 ‘그 어려운 시국’을 잘 살아내다가 광복 후엔 친일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되지만, 3‧1 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찍은 목판을 증거로 제시하여 무사히 풀려나게 된다. 그렇지만 명보는 좌익혐의로 감방에 갇혀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만다.

성수는 변화된 사회에 재빨리 적응하는 성향이라 일제 강점기에서도 승승장구한다. 이와는 다르게 명보는 일찍이 고려공산당을 이끌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데, 자신을 힘들게 하며 살아가는 재주밖에 없는 인물이다.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은 그런 명보를 통해 드러나는 듯하다. 3‧1 만세운동 후에 민족이 일본의 총검 아래 죽어가고, 세계 전역에 유혈사태와 폭력이 번져가는데도 사람들은 돈벌이가 되는 직위에 오르고자 기를 쓰거나, 자신의 토지에서 더 많은 소득을 짜내기 위해 혈안이고, 어떻게 해서든 재산을 불리는 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음에 명보는 놀란다. 상해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어떤 이들은 권력의 쟁취 그 자체가 독립운동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명보는 거듭 놀라게 된다. 혁명가랍시고 떠들어대는 작자들은 모두 계급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다녔지만, 정작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존중심을 보인 사람은 단 한 사람 명보였음을 작가는 밝힌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질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나루를 건넜으면 앞으로 걸어가야 하지만, 왜 뗏목을 두고 싸움만 되풀이하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일본보다 작은 반도 땅에서 살아가는 야수 호랑이를 영물로 그리고자 했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없는 호랑이의 대범한 기상을 이어받지 못하고 서로를 할퀴는 옹졸한 야수로 살아가는 ‘오늘날 작은 땅’의 사람들을 더 걱정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시대를 초월하여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재생산하는데 빠져 있는 사람들. 야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스스로 뛰어들어 파멸하더라도 미궁 속에 빠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함의가 두렵게 들려온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그저 수상 소식에 들떠 소비만 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인간의 위대함과 비루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인가. 이는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오래된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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