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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금오산 후망대에 올라

안정분 기자 / 입력 : 2023년 09월 08일
ⓒ 경북문화신문
지난 토요일 금오산 정상(해발 976m)에 올랐다. 23년 동안 구미에 살면서 정상까지 오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에는 사진을 배우면서 얼떨결에 출사를 위해 합류하게 됐고, 두 번째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 마애불에 관심을 가지면서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세 번째는 금오산 정상 바위에 새겨진 황기로 선생의 초서체 ‘후망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한 2014년 첫 등산 이후 다시는 금오산 정상에 오를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건만. 무엇이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성격이라 고행길이란 걸 알면서도 또다시 금오산에 올랐다. 

후망대(候望臺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높고 평평한 곳)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구미문화도시 실험실’에 참여해 구미의 역사 인물로 고아읍 출신의 서예가이자 초서(草書)의 대가로 ‘초성(草聖)’이라 불린 '고산 황기로'에 대해 탐구하면서다. 당시 황기로 선생이 낙향해 지은 정자인 ‘매학정’과 배향된 서원인 ‘경락서원’, 금오산 중턱 바위에 남긴 ‘금오동학’ 등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했다. 하지만 금오산 정상에 음각돼 있다는 후망대는 답사하지 않았다. 1953년 11월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에 미군통신기지가 들어서면서 건설과정에 콘크리트에 파묻혔다고 알려져 그런 줄 알고 아예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얄팍한 탐구인가. 조선 시대 문인들이 남긴 기행문 등을 통해 후망대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했더라면 후망대가 금오산 정상의 바위에 새겨졌다는 것쯤은 알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정상에 올라 확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도, 팩트 체크를 해야 하는 기자로서도 자격 미달이다.

후망대는 콘크리트에 파묻혀있지 않았다. 금오산 정상 현월봉 표지석 바로 앞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현월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줄라치면 후망대 글자를 밟고 서야 한다. 글씨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기보다는 쓰여져 있는 느낌이다. 입체감은 거의 없다.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뱀이 지나간 자국 같기도 하고.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을 찍어서 보는 것이 더 선명하다. 마치 탁본처럼.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하지 못하다. 후망대 글씨 중 ‘대’자 윗부분이 콘크리트로 덮여 있기 때문. 금오산 정상에는 이외에도 미군통신기지로 사용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현월봉 표지석과 후망대가 새겨진 바위 사이의 틈에는 가로 1m, 세로 0.5m의 콘크리트 벽돌이 박혀있는 등 콘크리트 파편들이 눈에 띈다. 게다가 미군통신기지(2만2,585m²) 중 정상을 포함한 일부(2만2,585m²)만 반환됐기 때문에 여전히 통신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현지답사, 반환당시 관계 공무원의 설명 등을 종합해보면 후망대는 2014년 10월 금오산 정상이 반환, 개방되면서 모습이 드러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아무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난달 22일 금오산 약사암 주지스님이 SNS에 사진을 올려 무슨 글자인지 묻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한미행정협정으로 잠자던 ‘후망대’ 깊은 잠에서 깨어니다>를 최초 보도한 본지도 후망대를 제대로 알리는 데 한 몫했다.

하지만 구미시의 문화재 인식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1953년부터 2014년 9월까지는 미군통신기지로 인해 철조망이 설치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개방 후에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9년이 다 지나가도록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적어도 금오산 중턱 바위에 새겨진 황기로 선생의 ‘금오동학’을 지금처럼 방치하지 않는다.  

구미시가 후망대 확인을 위해 금오산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확인 후 보호시설 설치, 문화재 지정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사정이야 어떻든 70년 만에 찾은 후망대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더이상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구미시가 적극 나서서 보존하고 관리하길 바란다. 
↑↑ 후망대(오른쪽부터 왼쪽으로)
ⓒ 경북문화신문
↑↑ 지난달 26일, 금오산 정상 바위에 새겨진 후망대를 배경으로 한 컷(글씨는 오른쪽으로 90도 회전해야 똑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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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분 기자 / 입력 : 2023년 0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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