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가 KTX 구미역 정차다. 무엇보다 KTX선로가 구미를 지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 KTX가 개통되기 전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구미는 경부선이 지나는 교통 여건이 나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속 300km를 넘나들고 서울까지 한시간대 주파가 가능한 KTX선로가 지나지 않으면서 초시대의 교통오지로 전락했다. 100여년 전 처음 경부선이 개통될 당시에도 철로가 구미를 지나지 않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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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흔적들을 들춰내어 재구성하고 상상하는 역사여행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금오산역은 1905년 경부선이 개통했을 당시에 있었던 금오산 뒤편에 있었던 역사이다. 그 역사 부근에 터널이 남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찾아갔다. 금오산역이 있는 곳은 행정구역상 김천시 남면 부상리. 승용차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마을 어귀의 밭.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지 않았다면 결코 찾지 못했을 그런 곳이다.
금오산역은 경부선 철도가 처음 생길 때 김천을 지나 약목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있던 역이다. 일제가 이곳 부상리에 역을 설치한 이유는 조선시대 역(驛)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시 이 부근의 철로 경사가 심하여 열차가 통과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금오산역은 개통 11년만인 1916년 구미를 경유하는 현재의 노선으로 변경됐다. 즉, 김천에서 아포, 구미 등을 거쳐 약목역을 통과하도록 한 것이다.
문헌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개통될 당시, 김천-선산-해평-대구로 노선이 계획됐으나 선산 유림의 반대로 김천-구미-왜관-대구로 그 철길을 변경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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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묻혀 철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금오산역이 있던 밭보다 훨씬 낮은 곳에 터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사가 급한 돌계단 아래로 내려가 화강암으로 쌓은 터널 입구에 닿았다. 어떻게 쌓았는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무너짐 없이 견고하다. 터널 입구에 서면 반대편 출입구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100년 전에 이곳에 증기기관차가 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겨울이라 터널 안 오른쪽의 도랑 물이 얼어 터널을 지나가 보았다. 언뜻 보기에 터널의 길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직접 가보니 500미터는 족히 넘을 듯하다. 차곡차곡 쌓은 화강암, 20세기 초 터널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터널 끝에 작은 저수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 나왔다.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터널 입구 윗 벽면에 새겨진 일진무강(日進無疆)이라는 한자를 나와서야 발견했다. ‘나날이 나아감에 한이 없다’는 뜻인데, 일제의 바람을 담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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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내내 살아있는 역사의 흔적을 보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터널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징용됐을까. 일제가 개통한 원래 경부선과 비슷한 경로로 2004년 KTX가 개통된 것은 우연인가. 1916년 이설된 것처럼 100년이 지난 현재 구미의 숙원인 KTX구미역 정차를 실현할 수 있을까. 처음 금오산역을 찾았을때와는 다르게 무거운 마음으로 현재의 KTX역사 구미 유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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